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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뉴스

여의도 18배 바다를 메운 '서해의 기적' 인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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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서해의 기적’ 인천공항
 
 
1925년 개항한 네덜란드 스키폴국제공항은 세계 최고 공항으로 평가받는다. 2001년 3월 문을 연 인천국제공항은 아시아 ‘넘버 원’에서 스키폴공항을 뛰어넘는 글로벌 1등을 지향하고 있다.

1961년 개항했던 김포공항은 1980년대부터 한국 대표 국제공항으로서 한계에 부닥쳤다. 특히 해외 여행 자유화는 김포공항에 대한 국민 불만을 촉발시켰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에도 새로운 국제공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김포공항을 대체할 공항 부지 선정은 난항을 겪었지만 1990년 6월 지금의 인천 영종도로 결정됐다. 그리고 100개월에 걸쳐 6조 2000여억원이 소요될 인천공항 프로젝트가 마침내 1990년 11월 첫삽을 뜬다.

이륙을 준비중인 비행기들이 대기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 계류장.

■ 아시아 최대 규모…최첨단 운행 시설 갖춰

인천공항은 당초 2020년 최종 완성하도록 계획이 짜였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다를 매립해 확보되는 1700만평 규모의 공항이 완공되면 인천공항은 매년 1억명의 여객과 700만t의 화물 수송 능력을 갖춘다.

인천공항은 한반도 유사 이래 최대 건설 사업으로 평가된다. 부지 면적만 여의도 18배, 15t 트럭 기준으로 43만 대분인 433만㎥의 콘크리트가 공사에 투입됐다. 부지 조성을 위해 옮긴 토사(土沙)가 1억 8000만㎥로 15t 트럭 1800만대에 달했다.

공항 핵심 시설 중 하나인 여객 청사는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 연면적15만평으로 여의도 63빌딩의 3.1배에 해당한다. 활주로는 포장 길이가 3750m, 폭 60m인 2본이 1단계에서 건설됐다. 이 정도 크기면 승객 800명을 태우고 음속의 2.5배 이상으로 비행하는 여객기 이착륙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본 간사이공항이나 중국 푸둥공항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인천공항의 또 다른 핵심인 관제탑은 높이가 100.4m로 콘크리트로 된 8각형 구조물이다. 이 관제탑은 아름다운 콘크리트탑상을 받기도 했다. 공항 내 설치된 통신케이블 길이는 1만 1079㎞이다. 이는 서울과 부산을 12회 왕복하고도 남는다. 이처럼 인천공항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인천공항 탑승동 수하물 운영센터(BOC)에서 직원들이 수하물 설비 운영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

규모도 크지만 항공 안전과 최첨단 운행 시설도 돋보인다. 24시간 아시아 허브 공항 역할을 하려면 항행 안전 시스템이 필수다. 인천공항의 경우 현재 설치된 시스템 성능은 CAT(카테고리)-IIIb 수준으로 가시거리가 100m 정도 돼야 이착륙이 가능하지만, 향후 CAT-IIIc로 바뀌면 가시거리가 ‘0’인 상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해진다. 가시거리가 300~400m 이상이어야 이착륙 허가가 나오는 일본 간사이공항과 비교해도 안전 시스템 측면에서 아시아 다른 공항보다 월등하다.

■ 인천공항,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인천공항 건설 사업에는 세계 공항업계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있다.

먼저 인천공항은 기본설계 중 활주로 배치와 여객 청사 위치를 결정하기 위해 외국의 기존 모델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당시 설계 또는 시공 중이던 미국 뉴덴버, 일본 간사이, 홍콩 첵랍콕, 싱가포르 창이 등이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공항들이 공통적으로 벤치마킹했던 대상은 바로 스키폴공항이었다. 스키폴공항은 1925년 처음 개항했지만 아직도 건설 중이다. 단계별로 공사가 이뤄지는 점, 공항을 여객 수송만이 아닌 쇼핑과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최초의 국제공항이라는 점 등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로 평가받는다. 지금의 인천공항 편의 시설이나 김포공항에 설치된 할인 매장, 복합 상영관 등은 스키폴공항을 부분적으로 따랐다고 보면 된다.

인천공항 건설에는 여러 장애물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한반도 분단 현실이었다. 활주로 방향을 정할 때 북쪽 방향의 제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연륙교가 건설돼 육지와 연결됐지만 건설 당시 공항 부지는 섬이어서 인력과 자재, 장비의 수송 문제가 심각했다.
 
인천공항과 육지를 잇는 영종대교에 상판을 얹는 모습.

근거리 해상 수송 수단이 원활하지 못했던 인천공항의 경우 영종도에 머무르는 근로자들의 주택과 전기, 가스, 수도 등이 턱없이 부족했다. 즉 공사용 인프라 부족이 심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근로자 숙소를 여객 청사와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하고, 취사 지역도 핵심 시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말레이시아 신국제공항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들쥐들의 케이블 훼손 사고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루 5000명 이상의 자원 봉사자들을 동원해 수화물 처리 시스템 성능도 검증했는데, 수화물 처리 시스템의 불완전 작동으로 인해 2년 이상 공기가 지연됐던 미국 뉴덴버공항 사고를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였다. 1만명 이상의 건설 근로자와 자원 봉사자들에게 일시에 휴대전화를 사용토록 해 공항 내 무선통신 시스템 성능을 검증하기도 했는데, 이는 첵랍콕공항이 개항 초기 통신 문제로 6개월 간 극심한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건설로 우리나라도 건설 산업을 대표하는 명품을 갖게 됐다. 1990년대 이후 개항한 국제공항들이 모두 초기에 극심한혼란을 겪었던 것과 달리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한국 건설산업의 경쟁력이다.

1980년대 이후 대규모 건설 사업에서 발생했던 민원과 환경 문제가 인천공항에서 없었다는 것도 모범 사례다. 국내 건설 사업에서 최초로 홍보관을 지어 현장을 관광 상품화시켰다는 점, 홍보관을 찾은 방문객을 홍보맨으로 바꿔놓았다는 점도 국내 건설 산업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017년 9월 1단계로 문을 여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1단계 완공 뒤 운영에 들어가면 연간 1800만명의 여객을 추가로 처리할 수 있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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