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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용궁사) 천년 세월에 또 한 해의 가을이 물든다

 

영종도 용궁사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이면 섬의 낭만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영종도가 기다린다. 대부분 이들은 인천공항이 거기 있기 때문에 가게 되는 경유지로 여길 뿐 영종도를 일부러 찾아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영종도를 아는 이들은 그곳의 숨은 매력을 손꼽아 가며 늘어놓는다. 그중 한 곳이 이곳 용궁사이다. 천년의 세월을 견뎌낸 늙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절집과 함께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백운산 등산로로 이어지는 산책로

그렇다고 큰 기대를 갖고 찾아갔다간 실망할 만큼 용궁사는 작고 초라한 절집이다. 여느 절집처럼 크고 웅장한 대웅보전을 갖춘 것도, 속세의 번뇌를 삭이고자 서성거려볼 그럴듯한 절마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떠억하니 앞을 가로막는 '용황각'이라는 전각도 생소하거니와 '용궁사'라는 현판을 단 중심건물엔 부처님보다 김치냉장고가 모셔져 있다(알고 보니 이 건물이 요사채였다).

두 그루 느티나무가 호위하는 용궁사

이런 황당한 첫 인상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절집을 둘러보면 천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오늘의 모습을 간직한 용궁사의 역사가 잡혀진다. 용궁사의 역사는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이곳 백운산 동북쪽 기슭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백운사라 했다. 후에 구담사라고도 불렀던 절집은 조선 철종 5년(1854)에 흥선대원군이 중수하며 용궁사로 바뀌었다.

'석파'라는 호가 선명한 용궁사 현판글씨

용궁사는 조선말의 풍운아로 일컫는 흥선대원군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흥선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와 기도를 올렸다. 구한말 세도가들이 대원군을 위해하려 했을 때 피신하려고 만든 다락방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요사채에 걸려 있는 '용궁사'라는 편액글씨도 대원군의 친필로 그의 호인 석파(石坡)가 선명히 보인다.
옥불상을 대신한 관음전 불상

새로 조성된 미륵불

용궁사라는 절 이름이 붙게 된 데는 아무래도 옥부처와 관련된 전설 때문인 듯하다. 옛날 손씨라는 한 어부가 영종도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쳐 놓았던 그물을 길어 올렸더니 조그만 옥부처 하나가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어부는 "잡히라는 고기는 안 잡히고 뭐 이런 게 걸렸지?"라고 투덜거리며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물을 바다에 던졌다가 건져 올렸더니 이번에도 또 그 옥부처가 걸려 올라왔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어부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옥부처를 안고 와 백운사(용궁사의 옛 명칭)에 모셨다. 이후 사람들이 절 앞을 지나갈 때 소나 말을 타고 지나가게 되면 가축의 발이 땅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이변이 생겨났다. 이에 사람들은 절 앞을 지날 때면 반드시 말이나 소에서 내려 지나가게 되었고, 백운사는 영험한 절로 인근에 소문이 났다.

수령 1400년의 할아비나무

흥선대원군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절에 모셔진 불상이 용궁에서 나왔으니 사찰의 이름을 용궁사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현판을 써주었다고 한다. 그 현판은 지금껏 남아 있으나 관음전에 모셨던 옥으로 만든 관음상은 일제 때 도난당하고 현재는 청동관음상을 모시고 있다.

오랜 느티나무에도 치성을 드린다

자리가 뒤바뀐 듯한 대웅보전과 요사채를 비롯해 용궁사 경내에는 관음전과 칠성각, 용황각 등이 있고, 최근에 세운 높이 11m의 미륵불이 있다. 눈여겨볼 만한 것 중 하나는 관음전 기둥에 붙은 해강 김규진이 쓴 주련(住聯 :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이다. 해강은 영친왕에게 서법(書法)을 지도했고 서화가. 호방한 필치로 유명하다.

칠성각에서 수능 기도를 올리는 부모들

용궁사 앞마당에는 수령 1,300년 정도로 추정되는 높이 20m, 둘레 5.63m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주하고 서 있다.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두 나무는 마치 손을 뻗쳐 서로를 잡으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로 불리는 이들 느티나무는 오늘도 천년의 세월을 머리에 이고서 단풍에 물들어가는 서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다.

한 몸의 은행나무

해강의 주련이 달린 관음전

*맛집
을왕리나 용유 해변으로 나가면 조개구이를 비롯한 푸짐한 해산물 요리가 기다린다. 잠진도 선착장 앞에 자리한 공항도시종합회타운의 팔미도해물찜(032-751-7540)이 유명하고 용유도의 황해해물칼국수(032-746-3017)는 번호표를 받아 대기해야할 만큼 소문난 맛집.


*가는 길
서울에서 88올림픽도로나 자유로를 타고 가다가 인천공항 가는 고속국도(130번)로 옮겨 탄다. 영종대교를 건너 첫 번째 만나는 금산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자연대로 고속도로 진출 후 1.3km 가면 운남 교차로이다. 공항신도시 방면으로 우회전해 700m 남짓 가다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용궁사 주차장이다.

 

 

오토타임즈 (201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