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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뉴스

밀항선 탔던 일본 거부 영종도에 꿈의 도시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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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기술적으로 벌어, 예술적으로 써야 한다”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 ‘마루한’을 일본 최대 파친코(빠칭코) 기업으로 키운 한창우(83) 회장이 남긴 어록(語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명언(名言)이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말도 드물지 않을까. 그만큼 한 회장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어머니가 싸준 쌀 두 되와 영한사전 하나만 들고, 일본행 밀항선에 몸을 실은 지도 내년이면 70년이 된다. 자그마한 나룻배에 몸을 실으며 떠난, 그의 출한국기(出韓國記)는 강산이 일곱 번 바뀌면서, 이제 신화(神話)가 됐다. 일본 내 열두 번째 부자로 자수성가한 그의 성공기는 현재, 재일동포를 비롯해, 전 세계 한상(韓商)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어느덧 육신의 나이는 희수(喜壽·77세)를 지나 미수(米壽·88세)를 바라보고 있지만, 열정만큼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다. 자신을 낳아준 대한민국과 길러준 일본을 향한 사랑과 헌신은 경남 사천(옛 삼천포) 코끼리바위에서 나룻배를 타며 태평양을 바라보던 1945년 9월, 그때와 똑같다.
 
명문 골프장 인수 종합레저기업으로 변신…
“돈, 기술적으로 벌어 예술적으로 써야 한다”

 
 
지난 7월25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한창우 마루한 회장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수백 명의 꽃다운 청춘들을 앗아간 파도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뻔뻔하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자택이 있는 일본 교토(京都)에서 세월호 비보(悲報)를 접한 한 회장은 팽목항으로 날아가, 유가족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가슴속에 품기에도 아까운 사랑스런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큰아들 한철(韓哲)군을 떠나 보낸 지가 벌써 30년도 훨씬 넘었지만, 한 회장의 마음 한켠은 여전히 시리고 아프다. 1978년 여름 홈스테이로 미국에 머물던 한 군은 미국 요세미티공원 절벽에서 실족사하며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안산 단원고 학생처럼, 딱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장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총명했기에 한 회장이 받은 충격은 더했다.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그는 2년간 경영일선에서 떠나 있었다.

시간이 지났지만, 그 역시 팽목항에서 바라본 바다가 두렵기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지금으로부터 69년 전인 1945년 10월 삼천포(현 사천시) 코끼리바위에서 출발한 작은 고기잡이배가 우여곡절 끝에 일본 시모노세키(下關) 근처에 닿을 내릴 때까지도 한 회장은 한시도 긴장을 푼 적이 없었다. 그는 마침내 일본 사회에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일본 사회에서 한 회장은 입지적인 인물로 불린다. 외국인, 그것도 한국인에게는 유달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온 일본 사회에서 한 회장은 불굴의 의지로 차별을 이겨내, 거부(巨富) 반열에 올랐다. 올해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집계한 ‘부자랭킹(The World’s Billionaires)’ 에서 한 회장 일가 재산은 25억 달러(2조5350억원)로 일본 12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 7위 이재현 CJ그룹 회장(23억달러)보다 재산이 많다.

하지만 검소함이 몸에 밴 탓에 한 회장은 지금도 재일동포사회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해외출장 시 수행비서를 대동하지 않고 홀로, 해외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해마다 수차례의 고국 방문 길에도 한 회장은 비싼 한정식집에서 식사하기보다 단돈 3000원짜리 잔치국수나 5000원 미만 백반으로 식사를 때우는 것이 다반사다. 일본에서의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냉정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는 늘 도움의 손길을 펼치기에 한 회장의 사회봉사활동은 일본 내에서 호평받고 있다.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시설을 지어 기부하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빈민 구제 사업에도 적극 나섰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한 회장은 1999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3등 서보장(瑞寶章)’을 받았다. 

도쿄 중심에 위치한 도쿄역에서 내려다보이는 퍼시픽센추리플레이스(Pacific Century Place). 이곳은 일본 내 사무소를 둔 외국계 기업을 비롯해 일본 최고 기업들이 사무실을 운영하는, 그야말로 일본 경제의 중심지다. 한 회장이 세운 마루한은 퍼시픽센추리플레이스 28층과 31층에 도쿄 사무소를 두고 있다. 28층에서 내려다보는 도쿄 도심의 전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도쿄역 바로 앞에 도쿄빌딩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가려졌지만, 예전에는 일본 천황이 사는 황거(皇居)도 보이는 등 그야말로 최고의 입지를 자랑한다. 이런 곳에 본사가 위치해 있다는 것은 마루한의 일본 내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파친코는 얼핏 보기에는 성인 유흥 오락시설 이미지가 강하다. 우리로 치면 사설 도박장과 같다. 사행(射倖)산업적 성격이 짙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파친코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일본에서 파친코는 한마디로 성인들이 드나드는 오락실이다. 지난 2011년 기준 일본 레저산업 규모는 67조9750억 엔이다. 이 중 파친코는 가정용 게임기, 노래방, 외식산업, 경륜·경마와 함께 ‘오락 부문’으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파친코는 일본 성인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많은 오락이다. 2014년 7월 말 현재 일본에는 1만2323개의 파친코 장(場)이 들어서 있으며, 이를 운영하는 법인은 4017개사나 된다. 시장 규모는 전체 레저산업에서 3분의 1인 19조380억엔에 달한다.



1. 인천 영종도에 들어설 드림아일랜드 조감도. (사진 : 조선일보 DB)
2. 일본 지바(千葉)현에 위치한 마루한 지바키타(千葉北)점. (사진 : 마루한)

 
마루한이즘으로 고객 서비스 증대

파친코는 최저 1엔으로 게임 배팅에 나설 수 있어 경제적 부담도 작다.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파친코는 요행수를 바라는 도박장보다는 기분 전환 삼아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은퇴한 노인들이 주요 파친코를 많이 찾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사업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왜일까.

“사실 일본에서 파친코 사업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요. 태생적으로 야쿠자(일본 조직폭력단)와 연관이 깊었던 데다 탈세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마루한)는 처음부터 지하세계와의 연결고리를 끊었어요. 야쿠자 세력이 강한 지역에는 아예 점포를 개설하지 않았죠. 초지일관 이런 경영철학을 지켜왔기에 오늘날 마루한이 일본 최대 파친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지난해 마루한의 매출은 2조1116억엔이며 경상이익은 605억엔이었다. 전국에 위치한 파친코장은 지난 3월 말 현재 299곳이며, 근무직원 수만 1만1856명에 달한다. 경기침체로 인해 관련 산업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마루한은 매년 꾸준히 이익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내 경영학계에서는 마루한만의 독특한 기업철학에서 이유를 찾는다. 이른바 마루한이즘(Maruhanism)이다.

“저는 모름지기 기업에는  세 가지 사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익을 내야겠지요. 아울러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적성을 최대한 발휘토록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저는 직원들에게 종업원 만족과 고객 만족이라는 부분에서 일본 최고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죠. 일본 내 모든 서비스 업종 기업 중에서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일본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될 테니까요.”

실제로 마루한 이전까지 대부분의 일본 내 파친코기업 직원들의 주 업무는 ‘고객 감시’였다. 일선직원들이 고객을 감시한다면 점주(店主)에게는 뒷돈을 챙기는 직원을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 회장은 출발부터 달리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객장을 쾌적하게 관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최근 마루한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한 회장은 장기적으로 마루한을 파친코 사업에 기반을 둔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레저·리조트 기업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이를 위해 마루한은 연초 일본 내 명문 골프클럽인 다이헤이요(太平洋)골프클럽 등 4개 회사를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한 회장은 다이헤이요 골프클럽 내에 최고급 리조트를 지을 계획이다. 다이헤이요 골프클럽은 일본 전역에 17개의 골프장과 1개의 골프아카데미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시즈오카(靜岡)현 고텐바(御殿場) 골프장은 일본의 유명 골프대회인 ‘미쓰이스미토모 비자 다이헤이요 마스터스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 마루한 교토 본사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한창우 회장. (사진 : 마루한)
 
다이헤이요GC 인수, 레저 기업 변신

이와 함께 한 회장이 남은 생애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나를 낳아준 고국(한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까’다. 지난 1993년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를 결성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의 불경기가 100년 만에 찾아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제가 일본에 와 60년간 지내온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어떻게 돌파할 수 있느냐. 일에 대한 열정을 키우는 게 답이에요. 또한 우리 한상(韓商)들의 장점은 끈끈한 네트워크죠. 한편 한국 정부나 국민들이 우리 한상이 한국 경제를 부강하게 만드는 꿈이라고 봐줬으면 해요. 일종의 고국에 대한 선물이라고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일류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라오스의 국민기업인으로 성장한 코라오홀딩스의 오세영 회장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죠.”

한 회장이 주도가 돼 추진하고 있는 영종도 복합리조트 ‘드림아일랜드’는 고국에 선사할 그의 필생(畢生)의 작품이다. 영종대교에서 인천국제공항 방향 진입로 초입에 들어설 드림아일랜드 사업은 2018년까지 3403억원이 투입돼 부지 조성 공사를 완료하고, 2020년까지 워터파크, 아쿠아리움 등 관광·레저시설과 한상 비즈니스센터 및 쇼핑아웃렛 등의 상업시설을 짓는다. 드림아일랜드 사업을 진행하는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는 마루한이 최대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7월25일 한 회장과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는 영종드림아일랜드사업(공식명-인천 영종도 준설토 매립장 항만재개발사업)에 대한 실시협약을 해양수산부와 체결했다.

“드림아일랜드가 들어설 영종도는 입지만으로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곳입니다. 대한민국 관문이자 동아시아 허브공항인 인천국제공항과 불과 15㎞ 떨어진 곳에 들어서죠. 오는 2020년 우리 ‘드림아일랜드’가 완공되면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공항을 나와 처음으로 보게 되는 관광레저단지가 될 것입니다. 이곳에 워터파크와 아쿠아리움, 각종 스포츠 시설, 쇼핑센터, 호텔 등을 짓는 것은 수도권 주민들을 위해서입니다. 또 드림아일랜드는 해외동포와 모국인 한국을 이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민족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모국과 해외동포 간 교류, 협력을 위한 공간이 바로 드림아일랜드죠.”

당초 한 회장과의 인터뷰는 1시간 남짓 예정돼 있었다. 인터뷰가 있었던 지난 8월7일 한 회장은 주주총회 준비 등의 이유로 대담(對談) 시간을 넉넉하게 가질 수 없었다. 모자란 이야기는 추후 저녁식사 시간에 나눌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에 건너온 후 겪었던 숱한 위기와 이를 극복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1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아베노믹스(아베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아베노믹스를 말할 때 통화정책만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실제로 아베노믹스는 금융정책, 재정정책, 성장전략 등 세 가지를 기반으로 삼고 있어요. 현재 일본은 ‘경제 회생’과 ‘재정 건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에요. 나라 빚이 지난해 1000조엔을 넘었는데 인구는 줄고 노인 인구의 비중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죠. 아베정부도 이를 알고 국민들의 동의하에 지난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린 겁니다. 내년 10월에는 10%로 인상될 예정이고요. 다시 말해 아베노믹스는 앞서 말한 두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야 성공하는 것이죠. 지금으로서는 성패를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봅니다.”

미수(88세)를 앞둔 그는 지금도 매일 한국 관련 뉴스를 시청하는 등 고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따금씩 대한해협을 넘어 오는 비보(悲報)에는 우리 국민보다 더 솔직한 감정을 표한다. 때문에 한국 젊은이들에 대한 열정과 관심도 대단하다. 자신을 길러준 일본을 대하는 관점도 비교적 객관적이다. 한 회장은 “과거는 용서할 수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한국 내 일부 사람들이 한국이 일본은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직도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쟁력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게 한 회장의 생각이다.
 


- 한창우 회장은 경영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헝그리정신과 도전정신을 꼽았다.
 
“750만 해외동포는 한국의 소중한 자산”

“지난 57년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기본으로 삼았던 게, 우선 헝그리정신과 도전정신이었습니다. 위기감과 긴장감을 늘 갖고 살아왔던 거죠. 기업은 약한 존재예요. 잘되다가도 어느 순식간에 망해 사라지는 게 기업이 가진 속성이죠.”

한 회장은 “과거에는 지하자원이 국력을 좌우했지만 21세기는 인적 자원이 국력을 결정하는 시대”라고 말하며 “따라서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750만 한인동포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74~75세가 되면 은퇴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은퇴하면 바로 늙어버린다는 생각에 좀처럼 은퇴도 못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병이 아닐까 생각하죠. 언제까지 건강할지 모르지만, 도전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야말로 저의 건강 유지 비결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 한창우 회장은…
1931년 경남 사천(옛 삼천포) 출생, 56년 일본 호세이(法政)대 졸업, 57년~현 마루한 회장, 현 공익재단법인 한창우·철문화재단 이사장, 재단법인 한창우·나가코 교육문화재단 회장,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장.


 
 
출처 : 이코노미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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