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공항 쪽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가정하자. 영종대교를 지날 때쯤 오른쪽에 거대한 건설부지가 눈에 띌 것이다. 지금은 아무 볼거리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지만 2~3년 뒤 이곳을 지날 때는 아마도 한번쯤 시선을 빼앗길지도 모르겠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유혹의 불이 24시간 꺼지지 않는 라스베이거스식 카지노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카지노는 따로 광고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김연하 인천경제자유구역청(ifez) 투자전략기획팀장은 말했다.
영종도 미단시티 내 일반상업지구 10구역 전경. 시저스엔터테인먼트와 리포그룹이 카지노 사전심사에서 적법 판정을 받을 경우 빠르면 2015년 이곳에 라스베이거스식 카지노리조트단지가 들어선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금산IC로 빠져나와 미단시티라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일반상업지구 10구역’이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눈이 밝아진다. 뒤에는 야트막한 금산을 지고 앞엔 운동장처럼 넓은 부지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 뒤로 시커먼 개펄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개펄 뒤 먼 바다엔 강화도와 정서진(정동진의 반대편)이 흐릿하게 떠 있다. 김연하 팀장은 “미단시티 지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곳 영종도 동북쪽 미단시티의 일반상업지구 10구역 8만9000여㎡(2만7000평) 부지가 바로 미국의 거대 카지노 자본 시저스엔터테인먼트와 인도네시아 리포그룹이 합작해 추진하는 카지노복합리조트가 들어설 땅이다.
시저스-리포 측 관계자는 “카지노뿐만 아니라 컨벤션센터와 스파, 워터파크, 라이브쇼홀 등의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며 “최종적으로는 2조원 정도 투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종도 남쪽에는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가 영종복합리조트단지 50만평에 인천월드시티(IWC)를, 인천국제공항 IBC-Ⅱ 구역에 크리스털시티를 개발할 계획이다.
경제청이 카지노 자본에 반색하는 것은 지지부진한 투자에 물꼬를 트는 앵커 사업이기 때문이다.
송도 국제도시가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한 이후 투자 유치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영종도는 외국인 투자의 사각지대였다.
미단시티개발은 7000억원을 투입해 2011년 말에 부지조성 사업을 끝냈지만 이렇다할 투자가 없어 1년 동안 땅을 그대로 놀렸다. 김연하 팀장은 “카지노만 들어오면 앞다투어 관련 투자가 몰려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지노가 다음 투자를 끌어내는 ‘마중물’이라는 얘기다.
■ 우려
허가 사전심사제로 바뀌며 새만금 등도 나설 땐 속수무책 매춘·마약 등 후유증 우려
관료들은 카지노 효과에 들떠 있지만 한편에선 어두운 그늘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사전심사제를 둘러싼 논란도 영종도를 배회하고 있는 ‘디멘터’ 중의 하나이다. 원래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카지노를 설립하려면 5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그중 3억달러 이상을 호텔 또는 국제회의시설 신축 등에 먼저 투자해야 허가를 신청할 수 있었다. 정부는 이를 완화했다. 지난해 9월18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경자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5000만달러만 예치하면 카지노 허가에 대한 사전심사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사전심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투자자가 최장 5년 내에 계획대로 투자를 완료하면 카지노 허가를 내줘야 한다. 이른바 사전심사제다. ‘선투자 후심사’가 ‘선심사 후투자’로 바뀐 것이다.
이승주 경제청 투자유치본부장은 “3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는데 정부가 나중에 안된다고 하면 어떡하냐는 투자자들의 불안을 없애준 것”이라고 말했다. 시저스 측 관계자는 “기존 조항이 만들어진 지 6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무데서도 하겠다고 나선 곳이 없었던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심사제는 외국인 투자자의 손톱 밑에 깊이 박혀 있던 가시를 빼주었다. 하지만 투자 유치에 목말라하던 정부가 쫓기듯이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문제점도 만만치 않게 남았다. 카지노라는 특수한 금지행위를 허가해주는 법과 절차를 완화하는데도 안전장치는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카지노가 난립할 경우 대책이 없다. 이전에는 외국인 증가 수에 따라 공고를 거쳐 카지노 허가 신청을 받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언제나 신청할 수 있다. 김진곤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산업팀장은 “수급상황을 고려해 카지노 수를 정책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경제자유구역은 인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새만금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5군데나 더 있다. 여기저기서 카지노를 하겠다고 나서도 막을 방법이 없다.
정영종 경제청 투자전략과장은 “카지노 업자들도 사업성을 따져보지 않겠느냐. 아무데나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견 그럴듯하다. 하지만 탐욕은 이성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김진곤 팀장은 “카지노가 난립하고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나빠지고, 경제자유구역 전체 발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자본이 카지노 면허를 취득한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을 인수해도 제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실현 가능성 여부와 관계없이 제도적으로 ‘먹튀’가 가능하다. 당초 사업계획서와 다른 진행을 했다고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향후 규제를 강화할 경우 외국자본과 분쟁에 휘말릴 소지도 있다. 카지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대상에서 제외돼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 자본의 경우 가능하다.
양일용 제주관광대 카지노경영과 교수는 “사전심사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사전심사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외자 유치에 급급한 정부가 재무와 신용상태, 재원조달계획의 적정성 등을 엄격히 따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제청이 강조하는 복합리조트라는 표현에도 디멘터가 달라붙어 있다. 정용진 투자전략과장은 “카지노와 호텔, 컨벤션센터, 대형 놀이시설, 쇼핑몰, 공연장, 극장 등이 결합된 복합리조트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카지노 도시’로 불리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지만 실상 복합리조트라는 말은 카지노를 그럴싸하게 싸주는 포장지에 불과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청이 성공모델로 받드는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리조트만 해도 그렇다. 2012년 3분기 카지노 매출이 4억7000만달러로 전체 매출 6억2550만달러의 75%를 차지했다. 실내 대운하 곤돌라, 컨벤션홀, 극장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부대시설을 갖춘 베네시안 마카오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카지노 매출이 6억7100만달러로 총매출(7억7280만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7%에 달했다. 카지노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카지노는 또 ‘벌레가 가득 든 캔’이기도 하다. 이 캔에선 어떤 벌레가 기어나올지 모른다. 매춘이나 마약, 마피아라는 독버섯이 자라날 수도 있고, 관광 시장이 왜곡될 수도 있다. 한국에 건너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번 돈을 몽땅 털려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양산될지도 모른다. 카지노의 탈세나 돈세탁을 방지할 수 있는 법체계가 마련돼 있는지도 의문이다.
디멘터의 키스는 인간의 영혼을 빨아들인다. 해리 포터는 디멘터를 물리칠 수 있는 지팡이와 주문이라도 있었다. 영종도는 과연 그런 무기를 갖고 있는가.
▲ 시저스와 리포는 어떤 그룹
시저스엔터테인먼트는 세계 최대의 카지노·호텔 그룹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특급호텔인 시저스 팰리스를 포함해 전 세계에 50여개 카지노 호텔, 7개의 골프코스를 갖고 있다. 2008년 경영악화에 시달리다 아폴로매니지먼트와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이 공동출자한 사모펀드 햄릿홀딩스에 인수됐다. 2011년 88억달러(약 9조3000억원)의 매출에 9억2300만달러(약 974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금융비용 등으로 6억87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시저스는 2012년 5월 현재 부채가 199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한다.
시저스와 합작한 리포그룹은 인도네시아 7위의 재벌이다. 금융과 부동산, 도시개발, 쇼핑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문어발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리원쩡 회장은 2010년 포브스 선정 인도네시아 40대 재벌 순위에서 28위에 올랐다. 당시 재산이 7억3000만달러로 평가됐지만 아시아 각국에 비상장 회사가 워낙 많아 실제 재산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네시아 가라와치 리포시티에 위치한 골프장 한가운데에 섬을 조성하고, 백악관 같은 저택을 지어 살고 있다.
▲ 오카다홀딩스는 어떤 업체
오카다홀딩스는 일본의 억만장자인 오카다 가즈오가 설립한 일본의 빠찡꼬 제작업체다.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는 카지노 개발·운영을 담당하는 자회사다. 오카다는 2012년 3월 포브스 세계 부자순위 719위에 올랐다. 개인재산만 18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재벌인 스티브 윈 윈 리조트 회장과 동업을 하다가 필리핀 카지노 허가와 관련해 공무원들에게 11만달러의 뇌물을 준 의혹이 제기되면서 갈라섰다. 윈 회장은 오카다의 불법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전직 FBI 간부까지 동원했다.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을 이유로 윈 회장은 오카다가 보유한 윈 리조트 주식 20%(당시 평가액 27억달러)를 강제 환수하고 10년 만기 대체어음으로 지급했다. 어음은 시장에서 30% 할인돼 오카다는 8억달러의 손실을 안게 됐다. 오카다는 아무런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일본과 미국 법원에 윈 회장을 고소했다. 오카다는 네바다주 게임통제위원회와 필리핀 사법당국의 조사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