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경제자유구역의 중심인 영종도는 에잇시티 등 굵직한 사업이 무산되면서 개발 속도가 더디다. 최근 해외기업들의 투자유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돌파구를 마련할 기회가 엿보인다.
영종대교로 연결되는 인천 영종도의 전경.
# 1. 9월 4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자유무역지역에서 반도체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의 생산·연구시설 착공식이 열렸다. 이곳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스태츠칩팩그룹의 6개 해외 공장 중 하나다. 그룹은 반도체 외주 조립과 테스트로 세계 시장 점유율 15%를 차지한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23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반도체 칩 생산으로 연간 8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그동안 경기도 이천의 SK하이닉스 반도체 건물을 빌려 사용했다. 2015년 6월 임대기간이 만료돼 영종도로 이전을 결정했다. 생산량의 80%를 항공으로 수출한다는 점에서 인천공항 근접성이 장점으로 작용했다. 공사 투자금액은 약 2400억원에 이른다.
# 2. 6월 4일 인천 영종도 운서동에서 ‘BMW그룹 드라이빙센터’ 기공식이 열렸다. 이 행사엔 헨드릭 본 퀴하임 BMW그룹 아시아태평양·남아프리카공화국 총괄 사장이 참석했다. 드라이빙센터가 세워지는 곳은 BMW 본사가 있는 독일과 미국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다. 24만㎡ 부지에 드라이빙 트랙, 고객센터, 트레이닝센터, 서비스 센터, 친환경 체육공원 5개 시설이 들어선다. 내년 봄 시험 운영을 거쳐 이르면 상반기 중 개장한다. 공사에 투입되는 예산은 약 700억원이다.
외국계 기업이 잇달아 영종도에 투자하고 있다. ‘빠찡꼬 황제’로 유명한 한창우 일본 마루한 회장도 영종도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일본 내 한상(韓商)들과 함께 영종도 매립지에 ‘세계 한상 드림아일랜드’를 만들겠다는 제안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다. 제안서가 통과될 경우 1조1180억원을 투자해 개발사업을 벌인다. 외국 기업의 투자 발걸음이 영종도 개발의 돌파구가 될까.
지난 9월 14일 지하철을 이용해 인천 영종도 공항신도시 운서역에 도착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9호선 급행열차를 탄 후 김포공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니 약 1시간이 걸렸다. 운서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왼쪽에 대형 롯데마트가 눈에 들어온다. 눈을 돌리면 은행·커피숍·편의점 각종 편의시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0년 전부터 입주가 시작된 이곳은 도시로서 기능을 갖췄다.
이곳에서 202번 버스를 타고 영종하늘도시쪽으로 향했다. 공항신도시에서 멀어질수록 빈 집들이 눈에 띈다. 급하게 지은 듯 내부 정리가 안된 주택이나 상가들이다. 경제자유구역 지정 후 보상을 노리고 토지를 사서 세운 ‘깡통집’이다. 20분쯤 달렸을까. 도로 일대에 20여 개의 부동산 중개업소가 보였다. 근처 미단시티와 영종하늘도시 부동산 특수를 기대하고 몰린 것이다.
곧 광활한 대지에 우뚝 선 건물들이 나타났다. 오롯이 땅과 고층 아파트 뿐이다. 영종하늘도시의 전경이다. 황서윤 수 부동산 대표는 “1만여 가구 중 절반 가량만 입주했다”고 얘기했다. 근처에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유입 인구가 늘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10분 거리에는 기반시설만 갖춘 미단시티가 있다.
에잇시티·카지노 리조트 개발 무산돼
영종도에 황량한 바람이 부는 데는 대규모 사업이 두 차례나 엎어진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첫 번째는 최근 인천 용유도와 무의도 일대를 마카오 3배 크기의 문화관광레저 도시로 건설하겠다는 ‘에잇시티(8자 모양 도시)’ 개발 사업이 무산됐다. 독일계 글로벌 호텔·리조트 기업 켐핀스키 그룹이 기한 내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5000만 달러(약 541억원) 상당의 땅으로 현물 출자하겠다고 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외국 현물출자는 불가능하다. 한 에잇시티 사업 관계자는 “처음부터 무리였다”고 귀띔했다.
“에잇시티 사업비로 예상한 규모가 317조원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1년 정부 예산에 맞먹는 금액을 섬에 쏟는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꿈같은 일이죠.”
두 번째는 카지노 리조트 유치다. 미국 최대 카지노업체 시저스 그룹과 일본 유명 빠찡꼬업체 오카다 홀딩스가 참여했다. 시저스는 아시아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로 알려진 리포 그룹과 손잡고 영종도 미단시티에 2조225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2015년까지 카지노를 비롯해 호텔·명품 매장·공연장·웨딩홀 조성 계획을 밝혔다. 여기까지가 1단계다. 2단계는 2023년까지 1300실 규모의 호텔과 골프장을 추가로 짓는다.
오카다 홀딩스는 자회사인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IBC-2)에 카지노를 포함한 3500실 규모의 호텔과 컨벤션 센터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예상 사업비만 3조원에 이른다. 영종하늘도시에도 카지노 호텔 두 곳과 테마파크를 세울 계획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두 곳은 카지노 사전심사 청구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두 업체 모두 적합 기준에 미달해 개발사업은 당분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굵직한 사업이 무산됐지만 여전히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진다. 영종도 사업 구역을 크게 중구 운북동, 인천공항국제업무단지, 영종도 매립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경제자유구역인 미단시티가 중구 운북동에 있다. 경제자유구역은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한 특별경제특구다. 세제혜택부터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곳에 카지노 리조트 사전심사를 신청했다 고배를 맛본 리포&시저스(LOCZ)는 재도전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취임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영종도가 동북아 레저복합도시로 발전하려면 카지노 유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시저스가 사업을 계속 진행한다면 다양한 방안으로 도움을 준다는 입장이다.
중구 운북동에는 항공 관련 기업 보잉사와 프랫 앤 휘트니(P&W) 두 곳이 진출한다. 보잉사는 운항훈련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하 인천경제청)과 2011년 12월 사업협약을 체결하고 지난 3월 토지 소유권을 이전했다. 올 하반기 중 착공할 예정이다. 총 1500억원의 자금이 투자된다. 완공되면 대당 2500만달러 상당의 모의비행훈련장치 12대를 수용할 수 있다. 하루 최대 400여명 이용할 수 있는 파일럿 트레이닝 서비스 사업도 개시한다.
미국 항공기 엔진 제작사인 P&W는 1200억원을 들여 항공엔진정비센터를 세운다. 항공기엔진 분해, 조립, 부품 수리, 엔진 성능 시험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2020년까지 연간 200대의 한공엔진을 정비할 수 있다. 약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의 큰손은 ‘파라다이스 세가사미’다. 파라다이스그룹이 일본 카지노 업체 세가사미홀딩스와 합작해 만든 회사다. 세가사미는 식품회사로 창업했다가 빠찡꼬로 성장했다. 이후 유명 게임업체 세가를 인수·합병해 몸집을 키웠다.
파라다이스그룹은 국제업무단지 내 하얏트 호텔에서 ‘골든게이트 카지노’를 운영한다. 최근 파라다이스가 보유하던 인천 카지노 사업 부문을 파라다이스 세가사미에 매각했다. 결과적으로 파라다이스 세가사미는 사전심사 없이 카지노 사업을 확대해 영종도 복합 리조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규모도 크다.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남쪽 33만㎡에 750실 규모의 특급호텔 2동, 국제 회의시설, 실내형 테마파크,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들어선다. 이후에도 호텔과 공원을 추가적으로 더 지을 계획이다. 2017년 개장을 목표로 준비 중인 복합 리조트에는 1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마지막으로 인천 영종도 매립지다. 여기엔 한국계 기업인이 주축이 된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이하 세계한상)’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세계한상이 유일하게 영종도 매립지 개발사업에 참여한 때문이다. 이 땅은 여의도 면적(290만㎡)의 약 1.1배 규모로 면적 316만㎡에 항만개발과정에서 생긴 준설토를 활용해 토지를 조성했다. 준설토란 토지를 개발하면서 생긴 진흙이나 바위를 일컫는다.
세계한상은 지난해 9월 이곳에 한상비즈니스센터, 스포츠 시설, 호텔, 물류단지 등을 만들겠다는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 사업의 중심에는 한창우 마루한 회장이 있다. 그는 일본내한상들과 104억원을 공동 출자해 드림아일랜드 기업을 만들었다. 한 회장의 지분이 60% 수준이다. 늘 기부정신을 강조한 그가 고국을 위해 선뜻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사업이 성사되면 세계한상은 1조118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 팀장은 “영종도는 인천공항 근처에 있어 글로벌 비즈니스가 가능한데다 2시간이면 수도권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강점을 부각하려면 보다 체계적인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꺼번에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헷갈릴 정도입니다. 굵직한 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낸 후에 단계별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마케팅이나 투자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 겁니다. ”
김기영 인천도시개발공사 과장은 “영종도의 최대 약점인 제3 연륙교 사업이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승용차로 영종도에서 인천대교와 영종대교를 건널 때 각각 왕복 1만2000원, 1만5200원의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인천시가 하루 1회 왕복할 경우 50%를 감면해주지만 여전히 교통비 부담이 큽니다. 하루 빨리 제3연륙교가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의 협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