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외국 자본들이 국내 카지노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그야말로 봇물 터진 듯한 모습이다. 카지노 게임에 열광하는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겨냥해서다. 관점에 따라 먹튀, 국부 유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일단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관광수요 확대를 위해 강력하게 지원해줄 태세다. 임기 내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지만 자칫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 경제, 산업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 성과에만 집착할 경우 두고두고 나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 국제자유도시 개발을 관리·감독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최근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제주도 곳자왈 근처 신화역사공원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해 4월 합의각서(MOA)를 체결한 중국 란딩그룹이 복합리조트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운영사로 겐팅싱가포르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7일 JDC는 보도자료를 내고 “홍콩란딩과 겐팅싱가포르가 100% 출자한 해피베이(Happy Bay)가 신화역사공원 조성을 위한 사업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로부터 사흘 뒤인 지난 2월10일 <블룸버그>, <로이터> 등 해외 외신들이 양지혜 홍콩란딩 회장의 발언을 근거로 “홍콩 란딩국제발전유한회사(홍콩란딩)가 제주도에 22억달러 규모의 카지노 리조트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보도하면서부터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홍콩란딩은 “이 부지는 외국인전용 카지노로 개발되며 ‘큰 손들’(high-stakes gamblers)을 위해 200개 테이블을 포함, 모두 800개의 테이블을 갖출 것”이라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혔다. 관련 내용이 전해지자 제주도 내 환경시민단체들이 즉각 반발에 나서면서 파문은 커지고 있다.
당초 JDC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신화역사공원 일대를 ‘복합리조트(Integrated Resort)’로 개발한다고만 명시돼 있을 뿐 카지노 등 위락시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증권시보> 등 중국 언론조차 “란딩그룹의 진짜 속내는 제주도 카지노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보도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JDC는 해명자료를 통해 “JDC는 카지노 허가에 대한 결정권이 없고, 카지노 도입에 관해 (두 업체와) 협의한 적도 없다”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영조 제주경실련 사무처장은 “제주도에서의 카지노 사업 인·허가권은 도지사 권한인 만큼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있다”며 “협약서 전문과 ‘카지노 사업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등의 정보공개를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광객을 겨냥해 해외 카지노 기업들이 속속 카지노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의 카지노 세븐럭에 해외관광객들이 출입하고 있다.
겐팅싱가포르 신화역사공원 개발 논란
최근 한국은 글로벌 카지노 업계가 주목하는 최고의 유망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선 인천 영종도는 외국자본에게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다.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외국 자본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곳인 데다, 공항 배후지로 개발될 경우 중국 관광객이 하루 일정으로 다녀가기에 충분한 거리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복합리조트’다. 현재 진출을 검토 중인 외국 자본들은 카지노에 대한 국내 부정적인 정서를 감안해 공통적으로 마카오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복합리조트 건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변정우 경희대 교수(호텔경영학과)는 “복합리조트에서 카지노는 전체 시설의 10% 정도 차지하지만 매출은 80% 정도를 책임지는 핵심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업들이 겉으로는 호텔 등 숙박시설과 테마파크 등 위락시설로 부지를 개발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핵심은 카지노 사업에 있다는 게 국내 관광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최근 영종도를 향한 대형 카지노업체들의 구애는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다. 현재 영종도에 복합리조트 건립을 추진 중인 해외 자본은 운북동 미단시티를 개발하는 리포&시저스(LOCZ)와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며 여기에 겐팅싱가포르와 또 다른 싱가포르 카지노 기업 샌즈도 인천시 남북동 국제업무지구 IBC-II에 외국인전용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를 짓기 위해 소유주인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샌즈와 겐팅싱가포르는 마리나베이샌즈, 센토사 복합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싱가포르 카지노 산업의 양대 산맥이다.
홍콩란딩·겐팅싱가포르가 공동 개발할 제주도 신화역사공원 복합리조트
글로벌 기업 4~5곳 영종도 노크
여기에 영종도 매립부지에는 일본 기업 마루한이 주도하는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가 2조 4000억원을 들여 복합리조트, 테마파크로 구성된 드림아일랜드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 인·허가권자인 해양수산부로부터 개발승인을 받은 드림아일랜드는 현재 공식적으로 ‘카지노 시설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일본 최대 파친코 기업 마루한이 전체 지분의 61%가량 보유하고 있는 점을 들어 착공이 임박해 사업변경을 요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본 기업 오카다홀딩스코리아가 5조원을 들여 짓는 영종하늘도시 복합리조트에도 카지노가 들어설 예정이다. 우리 기업으로는 파라다이스그룹이 일본 게임기업 세가사미와 손잡고 국제업무지구 IBC-I에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를 개발하고 있다.
영종도뿐만 아니라 제주도도 최근 거대 외국 자본들이 카지노 사업지로 주목하는 곳이다. 특히 중국계 자본 유입이 활발하다. 현재 제주도에 투자 의사를 밝힌 중국계 자본은 제주시 이호유원지와 헬스타운을 조성하는 분마그룹, 녹지그룹, 차이나비욘드 힐의 홍유개발, 신원리조트를 개발하는 백통그룹 등이다. 이 밖에 말레이시아 국적의 부동산기업 버자야그룹도 종합위락시설을 짓고 있다.
이 중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카지노 사업권을 따낸 개발프로젝트는 중문관광단지 주변에 종합레저단지를 조성하는 버자야그룹뿐이다. 현지에서는 나머지 중국 기업들도 조만간 사업계획 변경 등의 방식으로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단적으로 이호유원지개발사업 시행자인 분마이호랜드는 제주시 이호동 일대 공유수면을 매립해 종합유원지로 개발할 계획이었지만 사업진척을 이유로 지난해 말 초대형 카지노와 컨벤션시설을 짓는 사업변경 계획서를 제출했다. 헬스케어타운을 조성하는 녹지그룹도 2단계 공사 직전에 카지노 시설을 포함시키는 사업계획 변경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도 현지에서는 홍유개발이 짓는 차이나비욘드 힐 사업부지에도 카지노가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제주도 관광산업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버자야그룹과 형평성을 내세우며 대다수 기업들이 카지노 사업을 신청할 것”이라면서 “이들은 초기 사업 수익을 높이는 방법을 카지노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해외 자본이 국내 카지노 사업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왜일까. 입지여건도 그렇거니와 우리 정부가 외자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 이들을 한국으로 모이게 하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2월3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제2차 관광진흥확대회의를 열고 복합리조트의 외국인 투자자 자격요건을 완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 관광진흥책을 발표했다. 그전까지는 부실 사업자 선정과 먹튀 논란을 막기 위해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를 짓는 외국 자본은 ‘투자 적격(BBB등급 이상) 이상’의 신용등급 기준을 적용해왔지만 앞으로는 이를 탄력적으로 적용해 자금능력만 갖춘다면 신용등급을 엄격하게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이런 내용이 담긴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경자법) 시행령을 올 상반기 안에 통과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 조치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현행 관광진흥법에서 카지노 사업자가 국내에서 외국인전용 카지노를 허가받으려면 ‘신규 허가 이후 전국 외국인 관광객이 60만명 이상 증가’한 경우 이미 ‘관광호텔업’이나 ‘국제회의시설업’을 하고 있는 사업자에 한해 ‘문화부의 공모’ 절차를 밟도록 규정돼 있다. 외국 자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한층 까다롭게 느낄 수 있다. 때문에 국내로 진출하는 외국 자본들은 ‘사전심사제’라는 기형적인 방법으로 우회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복합리조트
사전심사제 기준 변경 논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9월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생겨난 사전심사제는 외국 카지노 기업에 대한 문호를 대폭 낮춘 제도다. 2012년 당시 정부는 정식허가를 받기 전 5000만달러를 선투자하면 서류심사만으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허가해 주도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그전까지는 3억달러를 먼저 투자해 특1급호텔 또는 국제회의시설을 짓고, 나머지 2억달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밝혀야만 카지노 신청이 가능했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리포&시저스와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 등이 사전심사 방식으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을 신청했지만 그해 6월 문화부가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내리면서 진출이 무산된 바 있다. 논란이 일자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문화부는 사전심사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허가방식을 ‘공모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공모제 전환을 추진하던 정부가 돌연 지난 2월 해외자본들이 강력하게 요구해온 신용등급 기준 인하를 들어주면서 논란은 거세지고 있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공모제 시행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사전심사 규정을 바꿨다는 것은 자칫 특혜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지난해 사전심사 불합격 판정을 받은 후 재심을 청구한 LOCZ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문화부는 재심을 늦어도 3월까지 결론 내리겠다는 방침인 가운데 만약 LOCZ가 사전심사를 통과해 사업인가를 받을 경우 이로 인한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정부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외자 유치에 나서다보니 혼선만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외국인 전용 카지노 인·허가권은 문화부 소관이지만, 사전심사제의 근거가 되는 경자법의 주무부처는 산자부이며 지난 2월 드림아일랜드 사업권은 해수부가 허가를 내줬다. 한 사립대 호텔관광학과 교수는 “외국 자본의 무분별한 카지노산업 진출을 우려한 문화부가 사전심사 방식을 공모제로 바꾸려고 하자 산자부가 경자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산자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생긴 혼선”이라고 설명했다. 선거를 앞둔 지방자치단체나 경영 혁신을 요구받아온 공기업들이 지나치게 단기 실적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낳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중국 관광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베트남, 대만, 필리핀, 일본,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등이 경쟁적으로 카지노산업을 육성하고 나선 것도 우리정부가 관련 규정을 손질해가며 카지노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렇다면 카지노산업이 알려진 것처럼 황금알을 낳는 사업일까. 관련업계에서는 “2015년 국내에 싱가포르와 같은 복합리조트가 들어설 경우 7조6000억원, 5만4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지난해 배재대 연구팀의 보고서(복합리조트 관련 경제효과)를 근거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여기서 근거로 제시된 싱가포르는 현재 자국 카지노에 내국인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송학준 배재대 교수(호텔컨벤션학과)는 “랜드마크와 같은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야 하는데 지금 LOCZ 계획처럼 2조원 정도 투자해서는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기업 역차별 방지책 마련해야
국부유출 시비를 막기 위해서는 허가제도 내 투자이행을 점검하는 규정을 반드시 집어넣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병권 호원대 교수(호텔관광학부)는 “이들 외국 자본이 사업권을 따낸 뒤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사업 추진을 늦추거나 카지노 이외 시설을 계획대로 짓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행과정 점검 등 대비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모호한 규정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사업허가를 내준 우리 정부가 되레 외국 자본에 끌려다닐 수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또 일부에서 이들 외국 자본이 내국인 입장 카지노(오픈카지노)를 요구할 경우도 대비해야 하며, 형평성 차원에서 국내 카지노 기업들도 외국자본과의 제휴를 통해 경제자유구역 내 진출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장병권 교수는 “신규 외국자본 유치뿐 아니라 기존 국내 카지노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이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면서 “중소업체들끼리 M&A(인수·합병)를 벌여 대형 외국 자본과의 경쟁에 밀리지 않도록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